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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 지키는 도깨비 만난 과부 " 집터에 숨겨진 천 냥의 비밀 (출처: 도깨비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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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300자 내외)
남편 잃고 쫓겨나, 귀신 나온다는 폐가에 홀로 살게 된 젊은 과부, 옥분. 그곳에서 만난 것은 귀신이 아닌, 집을 지키는 괴팍한 도깨비였습니다. "이 집터에 천 냥이 숨겨져 있다!" 도깨비가 그녀에게 기묘한 제안을 해옵니다. 외로운 과부와 신비한 도깨비의 아슬아슬한 동거, 그리고 하룻밤의 기적. 과연 그녀는 천 냥의 비밀을 풀고 새로운 운명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흉흉한 소문이 가득한 폐가. 억척스레 폐가를 닦고 쓸던 과부 옥분의 눈앞에, 집주인 행세를 하는 도깨비 '김 서방'이 나타납니다. 그는 집터의 비밀을 지키는 수호신. 옥분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하룻밤의 위로 끝에, 도깨비는 그녀의 운명을 바꿀 거대한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스르르 잠드는 야담'이 들려주는, 사람보다 더 따뜻했던 도깨비와의 기묘한 만남.
※ 쫓겨난 과부, 옥분
조선 어느 고을, 스물셋에 청상(靑孀)과부가 된 옥분이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혼례를 올린 지 불과 삼 년, 병약했던 남편은 그만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옥분은 눈물 마를 날이 없었지요. 남편이 살아있을 적엔, 비록 몸은 약했으나 참으로 다정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눈을 감자마자, 시댁의 구박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옥분의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아들 잡아먹은 년!" "낯빛이 복숭아꽃 같으니, 필시 사내가 꼬일 상이다!" 시어머니는 아들의 3년 상은커녕, 초상이 끝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옥분을 내쫓았습니다. 옥분이 이고 온 보따리 하나가 그녀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친정은 이미 기근에 풍비박산이 난 지 오래라, 돌아갈 곳조차 없었습니다. 옥분은 보따리를 들고 정처 없이 걷다가, 마을이 끝나는 외딴 언덕배기에 다다랐습니다. 그곳에는 흉흉한 소문이 가득한 폐가(廢家) 한 채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습니다. 십 년 전쯤, 욕심 많던 부자가 살다가 급살을 맞고, 그 뒤로 들어오는 사람마다 병을 얻어 나가거나, 밤마다 귀신 소동에 시달리다 도망쳤다는 곳이었지요. 마을 사람들은 그 집 근처로는 오줌도 누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옥분은 그 폐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썩어가는 기둥, 반쯤 무너진 담벼락, 거미줄이 칭칭 감긴 대문. "어차피 산 목숨인들 죽은 목숨과 다를 바가 무어냐" 옥분은 중얼거렸습니다. 시댁의 모진 구박과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견디느니, 차라리 귀신과 벗하고 사는 것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녀는 삐걱거리는 대문을 밀고, 그 흉가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마당에는 사람 키만 한 잡초가 무성했고, 마루는 썩은 낙엽과 짐승의 똥오줌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에 퉤!" 옥분이 침을 뱉으며 안방 문을 열었습니다. 방 안은 그나마 비바람을 막아주었는지, 먼지가 두껍게 쌓인 것 외에는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옥분은 그 자리에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보따리 안에는 시어머니가 마지막 자비랍시고 던져준, 딱딱하게 마른 보리떡 몇 개와 갈아입을 속적삼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옥분은 그 차가운 방바닥에 주저앉아, 해가 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붉은 노을이 찢어진 창호지를 비추자, 방 안은 마치 피가 번진 듯 섬뜩했습니다. '오늘 밤 정말 귀신이 나오면 어찌해야 하나'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그녀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 귀신이 나오면 차라리 내 신세 한탄이나 실컷 하고, 저승길 동무나 삼자.' 옥분은 독하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것이, 쫓겨난 과부 옥분이 이 세상에 버티기로 한 그녀만의 방식이었습니다.
※ 폐가의 첫날 밤
폐가에서의 첫날 밤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습니다. 옥분은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혹시나 귀신이 나올까, 짐승이 들이닥칠까 귀를 곤두세웠지만, 들리는 것은 그저 제 심장 소리와 바람 소리뿐이었습니다. 날이 밝자, 옥분은 몸을 일으켰습니다. 밤새 웅크리고 잤더니 온몸이 쑤셨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주저앉아 울고 있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살아야 한다. 여기서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 그녀는 소매를 걷어붙였습니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폐가를 '청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녀는 먼저 부엌으로 갔습니다. 솥단지는 녹이 슬어 구멍이 나 있었지만, 다행히 아궁이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삭은 나뭇가지로 대충 빗자루를 만들어, 마당의 잡초를 베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손이 찢어지고 피가 났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잡초를 베어내자, 흙먼지투성이지만 제법 너른 마당이 드러났습니다. 그녀는 썩은 마루를 닦고, 안방의 먼지를 털어냈습니다. 거미줄을 걷어내고, 찢어진 창호지는 일단은 그냥 두었습니다. 그렇게 꼬박 사흘을 쓸고 닦았습니다. 먹을 것이라곤 보리떡뿐이었지만, 그녀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저녁, 폐가는 더 이상 흉가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남루하고 초라했지만, '사람이 사는 집'의 구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옥분은 근처 개울에서 물을 길어와, 난생처음으로 이 집 아궁이에 불을 지폈습니다. 마른 잡초가 타들어 가며, 십 년 만에 처음으로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옥분은 그 연기를 보며, 서러운 눈물을 훔쳤습니다. "서방님 보고 계시지요 저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그날 밤. 옥분은 처음으로 다리를 뻗고 잠을 청했습니다. 아랫목이라 할 순 없지만, 불기운이 스민 방바닥은 시댁의 차가운 광보다 백배는 따뜻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습니다. 그녀가 아궁이에 불을 지핀 그 순간부터 이 집의 '진짜 주인'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옥분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때였습니다. 누군가 옥분의 귓가에 대고 거친 숨소리를 내뿜었습니다. "흐으읍!" 옥분이 화들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방 한구석에 시커먼 무언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 도깨비의 등장
옥분이 얕은 잠에서 퍼뜩 눈을 떴을 때, 방 안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아궁이에 지핀 불씨가 이미 다 꺼져버린 듯했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지독한 한기였습니다. 뼛속까지 스미는 냉기와 함께 짐승의 퀴퀴한 냄새 비릿한 흙냄새 묵은 유황 냄새 같은 것이 코를 찔렀습니다. 옥분은 숨을 죽였습니다. '왔구나 올 것이 왔어' 그녀는 이 폐가에 깃든 원혼이 드디어 자신을 찾아온 것이라 직감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방 한구석에서 '그르렁' 하는 낮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소리도 짐승의 소리도 아니었습니다. "누 누구 뉘시오!" 옥분이 이불을 움켜쥔 채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 시커먼 그림자가 천천히 옥분이 누워있는 아랫목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희미하게 타다 남은 아궁이 불씨가 썩은 문틈으로 새어 들어와 그 존재의 형상을 어렴풋이 비추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덩치는 장정 둘을 합친 것보다 더 컸고, 온몸은 시커먼 털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황소처럼 이글거리는 두 개의 눈알이 붉게 빛났고 그 이마 한가운데에는 작은 뿔 같은 것이 도드라져 있었습니다. "도 도 도깨비!" 옥분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너무 놀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도깨비는 옥분의 머리맡에 털썩 주저앉더니, 굵고 탁한 마치 오래된 기왓장이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네년이 감히 이 집주인의 단잠을 깨웠느냐?" "지 집주인이라니요 여 여기는 빈 폐가가 아니었습니까?" "폐가? 하하하! 크하하! 이놈의 어리석은 인간들은 제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줄 알고, 십 년만 비워두면 제멋대로 폐가라 부르는구나." 도깨비는 껄껄 웃었습니다. 그 웃음소리에 낡은 방문이 덜덜 떨렸습니다. "내가 이 집터를 지킨 지가 어언 백 년이다. 숱한 놈들이 이 집을 탐내고 들어왔다가 혼비백산 도망치기 바빴거늘 네년은 어찌된 배짱이냐? 사흘 밤낮으로 이 낡은 집구석을 쓸고 닦고 감히 이 몸이 잠들어 있던 아궁이에 불까지 지펴?" 옥분은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지만,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래 귀신이 아니라 도깨비였구나 시어머니 구박보다 도깨비가 무서울까' 그녀는 이가 딱딱 부딪혔지만, 애써 용기를 쥐어짜 이마를 바닥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저 저는 남편 잃고 시댁에서 쫓겨나 오갈 데 없는 과부 옥분이라 합니다 부디 부디 하룻밤 아니 이 추운 겨울만이라도 나게 해주십시오 김 김 서방님" 그녀는 얼떨결에 도깨비에게 '김 서방'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김 서방? 허! 네년 배짱 하나는 참으로 기특하구나. 내 이름은 없지만 그 호칭이 나쁘지 않구나." 도깨비 김 서방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옥분을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옥분은 그 눈빛에 속곳까지 꿰뚫리는 듯 부끄럽고 두려웠습니다. "네년 낯짝은 복숭아꽃처럼 반반하나 속은 썩었는지 어찌 아느냐? 좋다. 내 너를 시험해 보겠다." "시 시험이라니요?" "내가 지금 당장 배가 고프다! 네년이 불을 지피는 바람에 백 년 만에 깨어났더니 창자가 들러붙을 지경이다. 도깨비는 본래 메밀묵을 가장 좋아하지. 당장 쑤어 오너라. 탱글탱글하고 구수하고 시원한 메밀묵 한 사발 말이다!" "메 메밀묵이라니요!" 옥분은 기가 막혔습니다. "지금 이 깊은 밤중에 쌀 한 톨 없는 이 집에 맷돌 하나 없는 이 부엌에서 어찌 메밀묵을" "시끄럽다!" 김 서방이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도깨비에게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네년이 정성이 있다면 구해올 것이고, 정성이 없다면 핑계를 대겠지! 만약 동 트기 전에 내 입맛에 맞는 메밀묵을 대령하지 못하면 네년의 그 반반한 낯짝을 찢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저 썩은 마루 밑에 거름으로 쓸 것이다!" 김 서방은 그 무서운 말을 마치고는 "흥!" 코웃음을 치며 연기처럼 방 안에서 사라졌습니다. 옥분은 차가운 방바닥에 홀로 남아 망연자실 했습니다. '메밀묵이라니 이걸 어찌 한단 말인가 나는 이제 정말 죽었구나'
※ 기묘한 동거
옥분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대로 쫓겨나면 나는 이 추운 겨울에 얼어 죽는다 차라리 도깨비에게 맞아 죽는 것이 덜 억울하지'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일으켜 세우고, 등잔 하나 없는 칠흑 같은 부엌으로 달려갔습니다. '메밀 메밀가루 하다못해 메밀 한 톨이라도' 그녀는 샅샅이 부엌을 뒤졌습니다. 썩어서 쩍쩍 갈라진 뒤주 바닥을 긁어보고, 거미줄 친 항아리를 모조리 엎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쥐똥과 곰팡이 슨 곡식 찌꺼기뿐이었습니다. 옥분은 절망했습니다. '틀렸구나 나는 여기서 쫓겨나 얼어 죽을 팔자구나' 그녀가 힘없이 아궁이 앞에 주저앉아 서러운 눈물을 훔치던 그때였습니다. 방금 전까지 불씨가 남아있던 아궁이 잿더미가 이상하게도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무언가 바스락거리는 것이 짚였습니다. 잿더미 깊숙한 곳, 아직 온기가 남은 그 자리에 작은 짚 주머니 하나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옥분이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놀랍게도 잿물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메밀이 정확히 한 줌 들어있었습니다. '이 이게 어찌 된!' 옥분은 그것이 도깨비의 시험임을 직감했습니다. '나를 시험하고 있었구나' 그녀는 눈물을 훔치고 맷돌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부엌 구석, 무너진 선반 밑에 이가 빠지고 귀가 떨어진 깨진 맷돌 한쪽이 버려져 있었습니다. 옥분은 꼬박 한 시진(두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꽁꽁 언 손을 불어 가며 메밀을 갈았습니다. "서걱 서걱" 낡은 맷돌 소리가 적막한 밤을 갈랐습니다. 손이 찢어지고 피가 났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곱게 간 메밀가루를 들고 꽁꽁 얼어붙은 개울로 달려가 차디찬 물을 길어 왔습니다. 손이 얼어 감각조차 없었습니다. 아궁이에 다시 불을 지폈습니다. 솥단지는 구멍이 나 쓸 수가 없어, 부엌 구석에 굴러다니던 깨진 약탕관을 씻어 메밀을 쑤기 시작했습니다. 구수한 냄새가 폐가를 감쌌습니다. 간장도 양념도 없었지만, 그녀는 지혜를 냈습니다. 개울물에 소금을 아주 조금 풀고, 밭에 돋아난 이름 모를 풀을 뜯어 띄웠습니다. 옥분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낡은 나무 사발에 메밀묵을 담아 안방으로 들어갔을 때, 도깨비 김 서방은 이미 아랫목에 떡 하니 앉아 팔짱을 끼고 있었습니다. "가 가져왔습니다 김 서방님" 김 서방은 킁킁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옥분이 내민 사발을 낚아챘습니다. 그리고는 털 난 손가락으로 묵을 푹 찔러 보기도 하고, 사발 채로 들어 냄새를 맡기도 했습니다. 옥분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처분을 기다렸습니다. "후루룩 쩝! 쩝!" 김 서방은 순식간에 사발을 비웠습니다. 그리고 입맛을 다시더니 사발을 바닥에 '탁'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맛이 없구나." 옥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하지만 먹을 만은 하구나. 굶주린 도깨비에게는 이만한 진수성찬이 없지." 김 서방은 꺼억 하고 시원하게 트림을 하고는 말했습니다. "네년 정성이 갸륵하여 오늘은 이만 봐준다." "고 고맙습니다 김 서방님" "내일은 팥죽을 쑤어 오너라! 팥은 본래 귀신을 쫓는 물건이라 이 몸이 싫어하는 줄 아느냐? 천만에! 잘 익혀 단맛 도는 팥죽은 최고의 별미지! 팥 알 하나라도 덜 익거나 타기만 해봐라 그땐 정말 네년의 다리몽둥이를 분지를 것이다!" 그리고는 또다시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옥분은 그 자리에 다리 힘이 풀려 주저앉았습니다. 두려움 반, 안도감 반이었습니다. '팥죽이라니 내일은 또 어디서 팥을 구한단 말인가' 그렇게 옥분과 도깨비 김 서방의 기묘하고도 아슬아슬한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옥분은 다음 날 어김없이 아궁이 잿더미 속에서 기적처럼 팥 한 줌을 발견했습니다. 그 다음 날은 조 한 줌을 발견하여 조밥을 지었습니다. 옥분은 매일 밤 도깨비의 까다로운 주문에 맞춰 음식을 해 바쳤습니다. 그리고 도깨비는 매일 "맛이 없구나!" 하면서도 그릇을 싹싹 비웠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옥분은 더 이상 김 서방이 예전처럼 무섭지만은 않았습니다. 오히려 퉁명스럽고 괴팍하지만 매일 밤 꼬박꼬박 자신을 찾아와 밥 타령을 하는 그가 이 외롭고 스산한 폐가에서 유일한 말동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 하룻밤의 위로
그렇게 한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옥분은 이제 이 폐가 생활에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낮에는 집 뒤편, 도깨비가 괭이로 한번 쓱 그어 옥토로 만들어준 작은 밭을 일구었고, 밤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도깨비 김 서방의 저녁 시중을 들었습니다. 김 서방은 툴툴거리면서도, 옥분이 밭을 일굴 때 낡은 괭이를 가져다 놓기도 했고, 멧돼지가 밭을 망치지 않도록 밤새 집 주위를 쿵쿵 걸어 다니며 지켜주기도 했습니다. 옥분은 그가 겉으로는 무섭게 굴어도, 속은 따뜻한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은 유난히 달이 밝았습니다. 창백한 달빛이 찢어진 창호지를 환히 비추었습니다. 하지만 달빛이 밝을수록 옥분의 마음은 더욱 시리고 추웠습니다. 스물셋 젊은 과부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날. 바로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의 기일(忌日)이 돌아온 것입니다. 옥분은 낮에 몰래 산에서 캐 온 도라지와 밭에서 갓 자라난 푸성귀로 작은 제사상을 차렸습니다. 김 서방에게 늘 바치던 메밀묵 한 사발 옆에, 맑은 물 한 그릇과 작은 술잔을 하나 올리고 말없이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서방님 잘 계시지요 저는 이리 몹쓸 목숨 부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것도 도깨비와 한 집에서 말입니다 참 우습지요?" 처음에는 담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한번 터진 울음은 둑 무너진 강물처럼 쏟아졌습니다. 그것은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라기보다는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홀로 남겨진 자신의 처지에 대한 서러움이었고, 살아있는 젊은 육신이 느끼는 사무치는 외로움이었습니다. 남편이 그립다기보다는 그저 사람이 그리웠습니다. 따뜻한 사람의 온기가 미치도록 그리웠습니다. 아무도 없는 이 폐가에서 자신을 안아줄 든든한 팔이 절실했습니다. "흑 흐윽 흐어엉" 옥분은 엎드린 채 마른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소리 죽여 울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등 뒤에서 묵직한 인기척과 함께, 굵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울지 마라." 옥분이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습니다. 그곳에는 털이 숭숭 난 도깨비 김 서방이 아니었습니다.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낯선 사내가 달빛을 등지고 서 있었습니다. 낡았지만 기품이 흐르는 무명 도포를 단정히 입고, 짙은 눈썹 아래 칠흑같이 깊은 눈으로 옥분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훤칠한 키에 다부진 어깨 털북숭이 도깨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누 누구 뉘시오 김 서방님은 어찌하고?" 사내는 대답 대신 옥분의 젖은 뺨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습니다. 옥분은 피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눈빛에 홀린 듯 굳어버렸습니다. 사내의 손은 불처럼 뜨거웠습니다. 옥분의 차가운 뺨에 그 거칠지만 따뜻한 손길이 닿자, 옥분은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무 춥습니다 서방님 아니 김 서방님 너무 춥고 외롭습니다" 옥분은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속마음을 내뱉었습니다. 사내는 말없이 옥분을 자신의 단단한 품으로 끌어안았습니다. 옥분은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 품은 십 년 묵은 폐가의 냉기가 아닌,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 속 장작불처럼 뜨겁고 든든했습니다. 옥분은 사내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묵직한 나무 냄새와 흙 냄새, 그리고 알 수 없는 짐승의 향 같은 것이 옥분의 마음을 어지럽게 뒤흔들었습니다. 그것은 귀신도 사람도 아닌, 그저 살아있는 존재가 뿜어내는 강렬하고도 따뜻한 기운이었습니다. 사내는 옥분의 떨리는 어깨를 더욱 강하게 감싸 안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습니다. 옥분은 그 손길에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남편 죽은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겼습니다. 사내는 옥분을 가볍게 안아 들고 그녀의 작은 잠자리로 천천히 발을 옮겼습니다. 찢어진 창호지 틈으로 쏟아지는 달빛이 두 그림자를 하나로 비추었습니다. 옥분은 그날 밤 난생 처음으로 두려움도 외로움도 없는 아주 깊고 뜨겁고 따뜻한 잠을 잤습니다.
※ 천 냥의 비밀
다음 날 아침. 옥분은 낯설고도 기분 좋은 포근함에 눈을 떴습니다. 간밤의 격렬했던 꿈자리 때문인지 온몸은 나른했지만, 정신은 놀랄 만큼 맑았습니다. 방 안은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훈훈한 기운으로 가득했습니다. 간밤의 일은 꿈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아랫목에는 그녀가 덮고 잤던 낡고 차가운 솜이불 대신 아주 두껍고 부드러운 호랑이 가죽 이불이 덮여 있었습니다. 그 이불에서는 간밤에 자신을 안아주었던 사내의 그 묵직한 나무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 나왔습니다. '김 서방님' 옥분은 얼굴이 복숭아처럼 붉어졌습니다. 부끄러움보다 앞선 것은 기묘한 안도감이었습니다. 그날 밤. 옥분은 애써 태연한 척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 그녀의 마음은 기대감으로 두근거렸습니다. 하지만 으르렁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훤칠한 사내가 아닌 예전의 그 털북숭이 도깨비 김 서방이었습니다. "무 뭘 그리 빤히 보느냐! 팥죽은 다 되었느냐!" 옥분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고, 묵묵히 팥죽 사발을 내밀었습니다. 김 서방은 팥죽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헛기침을 크게 했습니다. "흠 흠! 어 어젯밤 일은 잊어라! 달빛이 너무 밝아 내가 잠시 미쳤었나 보구나. 네년의 울음소리가 하도 시끄러워 재워줬을 뿐이다!" 김 서방은 딴청을 부렸지만, 그의 이글거리던 황소 눈빛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고, 옥분을 대하는 태도도 어딘지 모르게 조심스러워 보였습니다. 옥분은 그런 김 서방의 모습에 그만 웃음이 터졌습니다. "푸훗" "뭐 뭣이 우스우냐!" "아닙니다 김 서방님. 팥죽이 입맛에 맞으시는지요?" "맛 맛이 없구나! 하지만 어제보다는 낫구나." 도깨비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옥분이 앉은 건너편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흠 흠 옥분아." "예 예? 김 서방님" "네년이 마음에 들었다. 아니 네년의 그 꿋꿋함과 정성이 마음에 들었다. 간밤에 네 서방 기일이라 하더구나." 옥분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내 너에게 비밀을 하나 알려주마. 내가 왜 이 흉흉한 폐가를 백 년이 넘도록 꼼짝없이 지키고 있었는지 아느냐?" 옥분이 고개를 들자, 김 서방은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습니다. "이 집터 네가 잠자는 방 바로 옆 저 썩은 마루 밑에 천 냥 천 냥의 황금이 묻혀 있다." "처 천 냥이요!" 옥분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스물셋 과부에게 천 냥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금이었습니다. "이 집의 원래 주인은 지독한 구두쇠 영감이었다. 그는 평생 남의 피눈물을 짜내 재산을 모았지. 하지만 아무도 믿지 못하여 처자식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 마루 밑에 황금을 숨겼다. 그리고는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그 황금을 끌어안고 '이 재물은 나보다 더 지독하고 탐욕스러운 자가 나타나면 그에게 주겠다. 만약 어설픈 놈이 손을 대면 삼대가 망할 것이다!'라는 무서운 악담(惡談)을 퍼붓고 죽었다." 옥분은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그 악담 때문에 나 같은 집터신(터주신)이 그 재물에 묶여 이 집터를 지키게 된 것이다. 지난 백 년간 수많은 인간들이 이 재물을 탐내고 이 집에 들어왔지만, 모두 그 구두쇠 영감의 저주와 탐욕 때문에 귀신에 홀리거나 미쳐 버리거나 병을 얻어 쫓겨났지." "그 그렇다면 저는?" "너는 달랐다." 김 서방의 눈이 옥분을 따뜻하게 바라보았습니다. "너는 이 폐가에 들어와 재물을 탐하지 않았다. 그저 네 힘으로 쓸고 닦고 밭을 일구었지. 그리고 이 무서운 도깨비에게 두려워하면서도 정성껏 공양을 올렸다. 너의 그 정성이 구두쇠 영감의 지독한 탐욕의 저주를 약하게 만든 것이다." 김 서방의 눈이 빛났습니다. "저 마루를 파 보거라. 그 천 냥은 이제 네 것이다. 네가 그 황금의 새 주인이다." 옥분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김 서방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황금에는 아직 구두쇠의 지독한 탐욕이 묻어있다. 그 천 냥은 네 복(福)이기도 하지만, 만약 네가 간밤의 그 외로움과 지금의 가난함을 잊고 그 재물을 너 혼자 삼키려 든다면 구두쇠의 저주가 다시 되살아나 너를 삼킬 무서운 독(毒)이 될 것이다. 명심하거라. 이 재물은 반드시 너처럼 배고프고 외롭고 설움 받는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너와 내가 이 지독한 저주를 풀고 진짜 복을 받는 유일한 길이다."
※ 새로운 운명
옥분은 김 서방이 알려준 대로 낡은 괭이를 들고 썩은 마루 바닥을 뜯어냈습니다. 마루 밑은 축축한 흙 냄새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옥분이 흙을 파내기 시작한 지 반 시진 쯤 지났을까. 괭이 끝에 '퉁'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단단한 것이 걸렸습니다. 옥분은 떨리는 손으로 흙을 걷어내자, 썩어 문드러진 거대한 나무 궤짝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궤짝을 열자 옥분은 숨이 멎는 듯했습니다. 궤짝 안에는 흙먼지가 묻어 있었지만, 그 사이로 눈이 부실 만큼 노란 황금이 동전과 덩어리 형태로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천 냥 평생 만져보기는커녕 구경도 못 해볼 엄청난 재물이었습니다. 옥분은 황금 덩어리 하나를 손에 쥐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시댁에서도 쫓겨나지 않았을 텐데 이것만 있으면 내 남편도 약 한 첩 더 써볼 수 있었을 텐데' 원망과 기쁨이 뒤섞여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김 서방의 무서운 경고를 잊지 않았습니다. '혼자 삼키려 들면 독이 될 것이다' 옥분은 궤짝을 닫고 그 위에 다시 흙을 덮었습니다. 다음 날, 옥분은 그 황금을 조금 꺼내 낡은 보자기에 쌌습니다. 그리고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그녀는 가장 먼저 자신을 '아들 잡아먹은 년'이라 욕하며 내쫓았던 시댁을 찾아갔습니다. 시어머니는 누더기 옷을 입은 옥분이 나타나자 소금을 뿌리려다, 그녀가 내민 묵직한 황금 덩어리를 보고 사색이 되어 마당에 엎드렸습니다. 옥분은 그들을 경멸하는 대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이것으로 저를 잊으십시오. 죽은 아드님 제사 잘 모시고 남은 생 편히 사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저처럼 힘없고 의지할 데 없는 며느리를 구박하지 마십시오." 그녀는 이어서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흉년에 굶주린 과부들과 고아들을 찾아 쌀과 옷감을 나누어 주고, 집 없는 노인들에게는 비바람이라도 피할 작은 초가라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옥분이 귀신 들린 폐가에서 황금을 가지고 나타났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온 고을에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녀가 도깨비에 홀려 미쳤다며 두려워했지만, 그녀가 묵묵히 베푸는 끝없는 선행에 감동하여 그녀를 '폐가 보살님'이라 부르며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옥분은 낡은 폐가를 허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 집을 지었습니다. 혼자 호의호식하기 위한 큰 기와집이 아니라, 자신처럼 오갈 데 없는 과부들과 아이들이 함께 모여 밭을 일구고 길쌈을 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옥분의 집은 더 이상 폐가가 아니었습니다. 밤낮으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아낙들의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 마을에서 가장 따뜻하고 복된 곳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습니다. 모든 저주가 풀리고 집터에 사람 사는 온기가 가득 찬 어느 보름달 밤. 옥분이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다 잠든 사이 김 서방이 마지막으로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털북숭이 도깨비도, 간밤의 그 건장한 사내의 모습도 아닌 맑은 바람 같은 형체였습니다. "옥분아 고맙다" 꿈결처럼 김 서방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습니다. "네가 구두쇠의 지독한 탐욕을 너의 따뜻한 나눔으로 씻어주었구나. 덕분에 나도 이 지긋지긋한 집터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다." 옥분이 눈을 뜨자 김 서방은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달빛처럼 부서지며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김 서방님! 안녕히 가세요! 고맙습니다!" 옥분은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김 서방은 떠났지만, 옥분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천 냥의 재물보다 더 귀한 수십 명의 '가족'을 얻었고, 이 집터의 '진짜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집에서 많은 이들의 어머니로, 할머니로 존경받으며 살다가 아주 편안하고 따뜻하게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뒤 그 집터는 '도깨비 보살터'라 불리며 마을 사람들이 대대로 복(福)을 비는 성스러운 장소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들려드린 '폐가를 지키는 도깨비와 과부' 이야기, 어떠셨나요?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혼자가 되었던 옥분은 가장 흉흉한 폐가에서, 가장 기이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사람에게서는 버림받았지만, 도깨비에게서는 위로와 기회를 얻었지요.
어쩌면 우리네가 가장 두렵다고 생각하는 존재가, 실은 가장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진정한 복(福)이란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데 있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도깨비는 알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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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희는 더욱 흥미진진한 옛이야기를 가지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