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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마지막 밥 한 그릇, 목숨으로 은혜를 갚은 꼬마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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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세상에 버림받고 굶어 죽어가던 꼬마 도깨비. 그에게 내밀어진 따뜻한 손길은 가난한 홀할머니의 마지막 밥 한 그릇이었습니다.
"할머니,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사람들에게 요물이라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끝까지 할머니 곁을 지킨 도깨비 복동이. 병든 할머니를 살리려 맨몸으로 눈보라를 뚫고, 가뭄에 빠진 마을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진 지극한 정성!
단돈 밥 한 그릇이 불러온,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가슴 먹먹한 기적의 이야기를 지금 바로 들려드립니다.
※ 1: 산골 마을의 외로운 할머니와 굶주린 도깨비의 만남
때는 선조 임금이 다스리시던 조선 중기, 산세가 험하고 골이 깊어 발길조차 드문 경상도 안동의 어느 깊은 산골 마을이었습니다. 붉게 타오르던 저녁노을이 서서히 잿빛으로 스러지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던 무렵이었지요. 마을에서도 한참을 더 올라가야 나오는 산기슭에는 지붕의 볏짚이 듬성듬성 벗겨진 낡은 초가집 한 채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문창호지는 곳곳이 찢어져 찬 바람이 새어 들었고, 기둥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삐딱하게 기울어 있었지만, 올해로 일흔을 훌쩍 넘긴 김 할머니에게 이곳은 50년 세월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유일한 보금자리였습니다. 남편과 자식들을 모두 돌림병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진 할머니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집 뒤편의 손바닥만 한 텃밭과 알을 낳아주는 암탉 세 마리가 전부였지요.
"에구, 오늘도 이렇게 또 하루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구나. 영감, 달막이 애비야... 거긴 춥지 않고 지낼 만한가."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두드리며 툇마루에 걸터앉았습니다. 주름진 얼굴 위로 쓸쓸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부엌 아궁이에 마른 장작을 밀어 넣고 불을 지피자, 매캐한 연기와 함께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가 빈집의 적막을 깼습니다. 텃밭에서 캔 시든 배추 몇 잎을 숭숭 썰어 넣고 끓인 묽은 된장국과 바닥에 눌어붙은 보리밥 한 주걱. 그것이 할머니가 하루 종일 굶주린 배를 채울 유일한 저녁상이었습니다.
'그래도 오늘 저녁은 닭이 낳아준 달걀이 하나 있으니, 모처럼 든든하게 속을 데울 수 있겠네.'
할머니가 소박한 밥상을 마루로 내오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싸늘한 가을바람 소리 사이로, 가느다랗고 힘없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처음에는 산짐승이 우는 소리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분명 누군가 부서질 듯한 목소리로 애타게 부르는 소리였지요.
"이 깊은 산중에 해 다 떨어진 마당에 뉘신가? 뉘신데 밖에서 그리 떨고 계시오?"
할머니가 삐걱거리는 사립문을 조심스레 열어젖히자, 문지방 아래 어둠 속에 시커먼 형체 하나가 웅크리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체구가 어린아이처럼 너무 작았고, 온몸에는 짐승처럼 덥수룩한 털이 나 있었습니다. 게다가 머리에는 작은 뿔이 돋아있었고, 어둠 속에서도 호랑이의 눈매처럼 노르스름한 안광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지요.
'아이고 맙소사, 이것이 말로만 듣던 도깨비인가 보구나. 어릴 적 할머니 무릎을 베고 듣던 그 무시무시한 도깨비가 내 집 문앞에 쓰러져 있다니.'
보통 사람 같았으면 기겁을 하며 문을 걸어 잠갔겠지만, 일흔 평생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홀로 살아온 할머니의 눈에는 무서움보다 처연함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도깨비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모습이 너무도 가엾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이고, 얘야. 네가 어쩌다 이런 산속에서 쓰러져 있는 게냐? 어디가 아픈 것이여?"
할머니가 두려움을 거두고 따뜻한 손길로 도깨비의 어깨를 어루만지자, 도깨비가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할머니... 저... 저는..."
"오냐, 오냐. 급하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숨 좀 고르고 천천히 말해보거라."
"배가... 배가 너무 고파요... 사흘 밤낮을 꼬박 걸었는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어요. 이제 더는 걸을 힘이 없어요..."
가녀린 어린아이의 목소리였습니다. 그 앳되고 구슬픈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할머니의 가슴 한구석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열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막내아들의 어린 시절 목소리와 너무도 닮아있었기 때문이지요. 할머니의 눈가에 어느새 촉촉한 물기가 서렸습니다.
"아이고, 이 가엾은 것아. 짐승이든 도깨비든 배고픈 서러움이 세상에서 제일 몹쓸 것인데. 어서, 어서 방 안으로 들어오너라. 방구들 뜨끈하게 데워놓았으니 어서 몸부터 녹이자꾸나."
할머니는 쓰러진 도깨비를 부축해 방 안으로 들였습니다. 도깨비는 인간의 손길에 흠칫 놀라 몸을 움츠렸지만, 할머니의 품에서 전해지는 한없는 온기에 이내 경계를 풀었습니다.
"할머니, 저 같은 요물을... 무섭지 않으세요? 도와주시려고요?"
"도와준다니, 무슨 섭섭한 소리냐. 생김새가 무어 그리 대수라고. 너도 하늘 아래 숨 쉬고 사는 귀한 생명이거늘, 내 어찌 모른 척하겠느냐. 잠시만 기다리거라."
할머니는 서둘러 부엌으로 나가 조금 전 차려두었던 자신의 저녁상을 고스란히 들고 왔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리밥 한 그릇과 시래기 된장국, 그리고 아껴두었던 귀한 달걀 하나를 톡 까서 밥 위에 얹어주었지요. 할머니 역시 아침부터 물로만 배를 채워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요동을 쳤지만, 눈앞에서 굶어 죽어가는 어린 생명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자, 차린 건 변변치 않지만 어서 이것 좀 먹어보렴. 속에 뜨거운 것이 들어가야 기운을 차리지."
"할머니... 이건 할머니께서 드실 유일한 저녁 아니에요? 뱃속에서 소리가 나시는데..."
도깨비는 염치없이 밥상을 쳐다보면서도 차마 숟가락을 들지 못했습니다.
"아이고, 괜찮다, 괜찮아. 나야 늙어서 하루 한 끼만 먹어도 배가 안 고픈 사람이다. 어서 먹어. 식기 전에 푹푹 떠먹어라."
도깨비는 할머니의 따뜻한 거짓말을 알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다른 도깨비들에게도 따돌림을 받으며 살아온 자신에게, 목숨과도 같은 마지막 밥 한 그릇을 내어주는 인간이라니요. 도깨비의 커다란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밥그릇 위로 번졌습니다. 도깨비는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처럼 입에 넣고 삼켰습니다. 밥 한 그릇에 담긴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온기가 얼어붙었던 도깨비의 몸과 마음을 사르르 녹이고 있었습니다.
※ 2: 이름 없는 꼬마 도깨비, '복동이'가 되어 가족이 되다
된장국 뚝배기까지 말끔하게 비워낸 도깨비의 뺨에 드디어 발그레한 혈색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방바닥의 따뜻한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가자, 잔뜩 굽어있던 도깨비의 작은 어깨도 한결 편안하게 펴졌지요. 할머니는 숭늉 한 사발을 건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제 좀 살 것 같으냐? 천천히 마시거라, 체할라."
"할머니,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저를 살려주셨어요. 이 은혜는 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는 무슨 놈의 은혜. 배고픈 아이 밥 한술 먹인 게 무슨 대수라고 그러느냐. 세파에 시달리다 보면 누구나 배곯고 힘들 때가 있는 법이지. 어려울 땐 서로 어깨 내어주고 기대며 사는 게 세상 이치란다."
"아니에요. 할머니께서 내어주신 건 평범한 밥 한 그릇이 아니에요. 차갑게 식어가던 제 심장에 다시 불을 지펴주신 생명줄이나 다름없습니다."
도깨비의 눈빛은 너무나도 진실하고 간절했습니다. 할머니는 주름진 손으로 도깨비의 북슬북슬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래, 기운을 차렸다니 다행이구나. 헌데, 어쩌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이 깊은 산중까지 오게 된 게냐? 갈 곳은 있고?"
"저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어요. 다른 도깨비들이 저를 무리에서 쫓아냈거든요."
"아니, 어째서? 무슨 몹쓸 짓이라도 한 게냐?"
"제가 도깨비치고는 덩치도 너무 작고, 힘도 약해서 사람들을 골탕 먹이지도 못하니까요. 도깨비의 수치라며, 쓸모없는 놈이라고 산에서 내쫓겼어요. 사흘 밤낮을 정처 없이 헤매다 할머니 집 앞까지 오게 된 거고요."
할머니의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제 동족에게조차 버림받고 홀로 추운 산속을 헤매었을 이 어린 생명이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요. 자식들을 앞세우고 빈집에서 홀로 수십 년을 버텨온 자신의 외로움과 겹쳐 보여, 할머니는 차마 도깨비를 그냥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쯧쯧, 불쌍한 것. 그 어린 것이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꼬... 갈 곳이 없다면, 그냥 여기서 나와 함께 지내는 건 어떻겠느냐? 나도 이 늙은이 혼자 살다 보니 적적하고 외로울 때가 많단다. 네가 말동무라도 해주면 내 아주 기쁠 것 같은데."
"정, 정말요? 저같이 흉측하고 보잘것없는 도깨비가 할머니와 함께 살아도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흉측하긴, 내 눈엔 그저 귀여운 손주 녀석 같기만 한걸. 대신, 나 혼자하기 벅찬 집안일이나 조금씩 거들어 주면 족하다."
"네! 네, 할머니! 뭐든지 다 할게요. 마당도 쓸고, 나무도 해오고, 물도 길어올게요! 제발 곁에만 있게 해주세요!"
도깨비는 뛸 듯이 기뻐하며 할머니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 주는 따뜻한 존재를 만난 기쁨에 도깨비의 꼬리가 붕붕 흔들렸지요.
"그래, 그래. 잘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 보자, 내가 너를 부를 이름이 있어야 할 터인데... 넌 이름이 무어냐?"
"저는... 이름이 없어요. 다른 도깨비들은 저를 그냥 덩치 작은 '꼬마'나 '쓸모없는 놈'이라고만 불렀거든요."
"이름이 없다니, 어허,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세상 모든 귀한 것들에는 다 부르는 이름이 있는 법이다. 옳지, 내가 좋은 이름을 하나 지어주마."
할머니는 잠시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아이가 앞으로는 아프지 않고, 버림받지 않고, 세상의 많은 복을 누리며 살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 '복동이'가 어떠냐? 이 집에 넝쿨째 굴러들어온 복덩어리라는 뜻도 있고, 앞으로 복을 듬뿍 받으며 살라는 뜻에서 '복동이'라고 부르마."
"복동이... 복동이! 할머니, 저 이제 복동이예요! 태어나서 제 이름이 생긴 건 처음이에요. 복동이, 너무너무 좋아요!"
그날 밤, 할머니는 마루 한 켠에 폭신한 볏짚과 남는 이불을 깔아 복동이의 잠자리를 정성스레 마련해 주었습니다. 빈집에 사람의 온기가, 아니 정다운 식구의 온기가 감도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습니다. 할머니도, 복동이도 밤새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지요.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할머니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삐걱거리던 마루는 윤이 나도록 깨끗하게 닦여 있었고, 텅 비어있던 물항아리에는 맑은 계곡물이 가득 차 찰랑거리고 있었습니다. 아궁이 앞에는 겨울내 땔 수 있을 만큼 장작이 산더미처럼 패어져 쌓여 있었지요.
"아이고, 복동아! 네가 이 새벽에 이 많은 일들을 다 해놓은 게냐?"
"네, 할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할머니께서 어제 주신 밥을 먹고 푹 잤더니, 도깨비 힘이 펄펄 솟아나지 뭐예요. 힘쓰는 일은 이제 다 제게 맡겨주세요!"
복동이는 수줍게 웃으며 얼굴에 묻은 숯검정을 닦아냈습니다. 그날부터 복동이는 낮에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집 안팎을 거두고, 밤이 되면 텃밭을 일구고 깊은 산에서 귀한 약초나 달콤한 산열매를 한가득 따와 할머니의 머리맡에 두었습니다.
"할머니, 이거 드셔보세요. 저 깊은 골짜기 벼랑 끝에서 따온 건데, 사람이 먹으면 무병장수 한대요."
"아이고, 우리 복동이 덕분에 이 늙은이가 호강을 다 누리는구나. 달다, 아주 달아."
복동이가 가져온 산열매를 먹고, 매일 아침 복동이가 치워놓은 깨끗한 마당을 밟으며 할머니는 눈에 띄게 건강해지셨습니다. 굽었던 허리도 펴지고, 잿빛이던 얼굴에도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지요. 외로움과 한숨뿐이던 낡은 초가집에는 매일같이 할머니의 따뜻한 웃음소리와 복동이의 재잘거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인간과 도깨비였지만, 두 사람은 그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위하는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 3: 매서운 겨울, 병든 할머니를 살려낸 도깨비의 지극한 정성
세월이 흘러 어느덧 산골 마을에 매서운 동장군이 들이닥쳤습니다. 예년보다 훨씬 일찍 찾아온 강추위는 온 산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고, 무릎 높이까지 쌓인 폭설은 낡은 초가집의 지붕을 짓누를 듯 맹렬하게 쏟아져 내렸지요. 복동이가 밤낮으로 아궁이에 장작을 지피며 방안을 덥혔지만, 문틈으로 스며드는 칼바람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할머니의 기력은 눈에 띄게 쇠약해져 갔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가벼운 마른기침인 줄 알았습니다.
"콜록, 콜록... 아이고, 날이 차서 그런가 목이 자꾸 칼칼하네."
"할머니, 따뜻한 숭늉 좀 드세요. 제가 방구들 더 뜨겁게 데워놓을게요."
복동이는 걱정스런 마음에 밤새 불을 땠지만, 할머니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었습니다. 기침 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더욱 거칠어졌고, 밤이면 불덩이처럼 열이 올라 끙끙 앓는 소리를 내셨지요. 며칠 뒤에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 것조차 버거워하실 정도로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눈 좀 떠보세요! 제발요..."
복동이는 애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뜨거운 물수건으로 밤새 할머니의 이마를 짚어 드리고, 손발을 주물렀지만 열은 좀처럼 내리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얕은 숨소리를 들을 때마다 복동이의 가슴은 두려움으로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복동아... 미안하다. 네가 끓여준 잣죽이라도 한 술 떠야 할 터인데... 도무지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는구나..."
"할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당장 산 아래 마을로 뛰어가서 의원 영감을 모셔 올게요. 네? 조금만 버티세요."
"아니다, 안 돼. 의원 영감을 부르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집에 그럴 비단이 어디 있느냐. 게다가 이 눈보라를 뚫고 뉘가 이 산꼭대기까지 오겠어. 그냥... 그냥 며칠 푹 쉬면 나을 감기다..."
할머니는 힘없는 손으로 복동이의 털복숭이 손을 꼭 쥐어주며 애써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복동이는 알 수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가르쳐준 유일한 가족, 할머니를 영영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안 돼, 절대 안 돼. 내가 어떻게 얻은 할머니인데.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할머니를 꼭 살려낼 거야!'
복동이는 단호한 결심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할머니, 저 금방 다녀올게요. 걱정 마시고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꼭 낫게 해 드릴게요."
복동이는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험준한 겨울 산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도깨비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의 약초,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낸다는 천년 묵은 산삼과 절벽 바위틈에서 자라는 불로초를 찾기 위해서였지요.
눈은 허리춤까지 차올라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온몸이 푹푹 빠졌고, 칼날 같은 눈보라가 복동이의 작은 몸을 사정없이 할퀴었습니다. 손발이 꽁꽁 얼어붙어 감각조차 사라져갔지만, 복동이는 오직 할머니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가파른 절벽을 기어오르고, 언 땅을 맨손으로 파헤쳤습니다. 도깨비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며칠 밤낮을 헤맨 끝에, 마침내 깎아지른 듯한 벼랑 끝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산삼과 영지버섯을 캘 수 있었습니다.
"찾았다! 이걸 달여 드리면 할머니가 분명 툭 털고 일어나실 거야!"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복동이는,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밤새워 정성껏 약초를 달였습니다. 도깨비의 간절한 염원과 신통력이 스며든 약탕기에서는 맑고 향긋한 냄새가 피어올랐습니다.
"할머니, 약 달여왔어요. 한 모금만이라도 꼭 드셔야 해요."
복동이는 의식을 잃어가는 할머니를 조심스레 부축해 앉히고,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약을 떠 입가에 흘려 넣어 드렸습니다. 그렇게 꼬박 사흘을 잠 한숨 자지 않고 곁을 지켰습니다. 산에서 꿩을 잡아와 기름진 고깃국을 끓여 올리고, 식어가는 할머니의 손발을 제 가슴에 품어 녹이며 눈물로 간호했지요.
"제발... 제발 우리 할머니를 데려가지 마세요. 제 수명을 다 떼어드려도 좋으니 제발..."
복동이의 지극한 정성과 눈물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요. 이레째 되던 날 아침, 기적처럼 할머니의 이마에서 열이 쑥 내리더니, 쌕쌕거리던 숨소리가 평온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할머니가 무거운 눈을 번쩍 뜨셨습니다.
"복동아..."
"할머니! 할머니, 저 알아보시겠어요? 눈을 뜨셨군요!"
복동이는 할머니의 품에 와락 안겨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지난 며칠간 참아왔던 두려움과 안도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지요.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 네가 밤낮없이 나를 간호하느라 이렇게 야위었구나. 미안하다, 이 늙은이가 너를 고생만 시키고..."
"아니에요, 할머니. 할머니가 눈을 떠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요. 할머니가 제 생명의 은인이시잖아요. 제 목숨을 다 바쳐서라도 할머니를 지키는 게 제 도리인걸요."
할머니는 눈물이 범벅이 된 복동이의 얼굴을 부드럽게 닦아주었습니다.
"복동아, 넌 그저 짐승이나 요물이 아니란다. 넌 이제 내 친손자나 다름없어. 네 녀석이 나를 살려주었으니, 우리 둘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진짜 가족이 된 게야."
할머니와 도깨비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따뜻한 온기를 나누었습니다. 매섭게 몰아치던 바깥의 눈보라도, 작은 초가집 안을 맴도는 두 사람의 지독히도 시린, 그러나 세상 무엇보다 따뜻한 사랑 앞에서는 스르르 녹아내리는 듯했습니다. 병마를 이겨낸 두 사람의 유대는 이제 그 어떤 편견과 시련도 갈라놓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 4: 마을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 그리고 할머니의 단호한 변호
혹독했던 겨울이 지나고, 산골짜기에도 어김없이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얼어붙었던 계곡물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녹아내리고, 산등성이마다 진달래와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났지요. 하지만 이 아름다운 봄기운과는 달리, 산 아래 마을에서는 김 할머니를 둘러싼 흉흉한 소문이 봄바람을 타고 독버섯처럼 번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마을 아낙네들이 빨래터에 모여 앉아 방망이질을 하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요. 다 죽어간다던 김 할머니가 며칠 만에 씻은 듯이 나아 장에 땔감을 내다 팔 정도로 건강해졌다는 이야기부터, 깊은 밤이면 할머니네 낡은 초가집 부엌에서 도깨비불이 번쩍거린다는 이야기까지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풀려졌습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할머니가 산귀신이나 요물에게 홀려 넋을 빼앗겼을 것이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도 했습니다. 혼자 사는 노인의 집 마당이 매일 아침 빗자루 자국 하나 없이 정갈하게 쓸려있고, 겨우내 쓸 장작이 사람의 솜씨가 아닌 듯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는 사냥꾼의 증언까지 더해지자 마을 사람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보게들, 아무래도 그 윗동네 김 할머니네 집에 몹쓸 요물이 단단히 똬리를 튼 모양이여. 안 그래도 외따로 떨어져 사는 노인네라 무슨 변을 당해도 모를 텐데,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러게 말이여. 밤마다 짐승 털갈이하는 소리 같은 게 들린다는데, 필시 사람 잡아먹는 도깨비가 틀림없어. 마을에 화가 미치기 전에 장정들이 올라가서 요절을 내야 쓰겄어!"
결국 괭이와 낫, 몽둥이를 빼어 든 마을의 젊은 장정 대여섯 명이 씩씩거리며 할머니의 초가집으로 몰려갔습니다. 때마침 봄나물을 캐러 바구니를 들고 마당을 나서던 할머니는 험악한 얼굴로 들이닥친 마을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다행히 복동이는 아침 일찍 깊은 산속으로 약초를 구하러 나가고 집에 없는 상태였지요.
"아니, 이 아침부터 웬일들로 이리 떼를 지어 올라오셨는가?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게여?"
"할머니! 저희가 다 듣고 속속들이 확인하러 왔구먼유! 할머니 댁에 흉측한 도깨비가 숨어 산다면서유? 할머니 혼자 사시는데 집안 꼴이 이리 번쩍번쩍하고, 앓아누우셨던 분이 하루아침에 펄펄 날아다니시니, 필시 요물에게 단단히 홀리신 게 틀림없어유!"
"요, 요물이라니! 쓸데없는 소리들 말고 썩 돌아가시게! 내가 부지런을 떨어 집안을 거둔 것이고, 산신령님이 도우사 병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인데 어찌 다짜고짜 남의 집에 들이닥쳐 생떼를 쓴단 말인가!"
할머니는 짐짓 호통을 치며 장정들을 막아섰지만,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방안과 헛간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싸리문 밖에서 바스락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복동이가 산더미 같은 산나물과 칡뿌리를 한가득 안고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복동이는 낯선 사람들의 모습에 당황하여 털북숭이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얼어붙고 말았지요. 그 낯설고 흉측한 형상을 정면으로 마주한 마을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으악! 도, 도깨비다! 진짜 뿔 달린 도깨비가 나타났다!"
"이놈의 요물! 당장 할머니에게서 떨어지지 못할까!"
장정들이 몽둥이를 치켜들고 복동이를 향해 달려들려는 찰나, 할머니가 번개처럼 앞을 가로막고 섰습니다. 일흔이 넘은 노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결연하고 단호한 기세였지요. 할머니는 벌벌 떠는 복동이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기며 두 팔을 활짝 벌렸습니다.
"다들 그 몽둥이 당장 내려놓지 못할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이 아이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
"할머니! 지금 제정신이세유? 저건 사람을 홀려 잡아먹는 몹쓸 도깨비란 말이어유! 비키세유!"
"아니다! 너희들 눈에는 그저 흉측한 도깨비로 보이겠지만, 이 아이는 내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자 하늘이 맺어준 내 금쪽같은 손주 녀석이다! 내가 열병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맬 때, 눈보라를 뚫고 산꼭대기를 기어올라 불로초를 캐어 나를 먹여 살린 것이 바로 이 여린 아이란 말이다! 평생 나를 버려두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너희들이, 매일같이 내 수발을 들며 온기를 나누어준 이 착한 아이를 무슨 자격으로 요물이라 부르며 내치려 든단 말이냐!"
할머니의 피 맺힌 절규에 마을 사람들은 그만 망연자실하여 들고 있던 몽둥이를 슬그머니 내려놓았습니다. 할머니의 주름진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복동이다. 우리 집에 복을 가져다준 귀하디귀한 내 새끼란 말이다. 겉모습이 다르다고 다 나쁜 것은 아니야. 사람의 탈을 쓰고도 짐승보다 못한 짓을 하는 자들이 천지에 널렸거늘, 이 아이의 마음씨는 너희들 백 명을 합친 것보다도 맑고 따뜻하다. 정 이 아이를 내쫓고 싶거든, 이 늙은이부터 먼저 쳐 죽이고 가거라!"
할머니의 벼락같은 호통과 목숨을 건 변호 앞에,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등 뒤에 숨어 할머니의 낡은 치맛자락을 꼭 쥐고 있던 복동이의 커다란 눈에서도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흙바닥을 적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요물이라 손가락질하며 돌을 던질지라도, 자신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고 막아주는 할머니의 넓고 따뜻한 등은 복동이에게 이 세상 전부이자 가장 튼튼한 성벽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헛기침을 하며 하나둘씩 뒷걸음질을 쳤고, 이내 슬그머니 산을 내려가 버렸습니다. 비록 편견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의 그토록 진실하고 처절한 외침은 사람들의 가슴 한구석에 묵직한 돌덩이 하나를 던져놓고 있었습니다.
※ 5: 세월이 흘러 맞이한 할머니의 임종과 도깨비에게 남긴 마지막 소원
어느덧 복동이가 할머니네 초가집 마루 밑에 똬리를 튼 지도 십 년이라는 덧없는 세월이 속절없이 흘렀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였지만, 두 사람 사이를 가득 채운 사랑과 신뢰는 가을날 영그는 알밤처럼 더욱 단단하고 야물게 영글어 있었지요.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도 복동이는 흔들림 없이 할머니의 든든한 지팡이가 되어 주었고, 할머니 역시 복동이에게 인간 세상의 이치와 따뜻한 정을 아낌없이 가르치며 참된 어미이자 스승의 역할을 다하셨습니다. 하지만 야속한 세월의 흐름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법이었습니다. 여든 고개를 훌쩍 넘어버린 김 할머니는 그해 가을, 나무들이 노란 잎을 미련 없이 툭툭 떨구어 내던 무렵부터 눈에 띄게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번에는 복동이가 아무리 귀하다는 천년 묵은 산삼을 캐어다 고아 바치고 영지버섯을 우려내어 드려도,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생명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지는 못했습니다.
"콜록, 콜록...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 이제 그만 헛수고하거라. 산 목숨이 갈 때가 되면 자연스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인 것을... 네가 아무리 용을 써도 이 낡은 몸뚱어리는 이제 수명을 다한 것 같구나."
할머니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곁을 지키며 눈물바람을 하는 복동이의 거친 털을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할머니, 제발 그런 무서운 말씀 마세요. 제가 도깨비불을 피워서라도 저승사자가 못 오게 길목을 막을 거예요. 제가 할머니 수명을 연장시킬 방도를 기필코 찾아낼 테니, 제발 눈 감지 마세요, 네?"
복동이는 마치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며 할머니의 앙상한 손을 제 볼에 비벼 댔습니다. 십 년 전 굶주려 죽어가던 자신에게 밥 한 그릇을 내어주며 온기를 나누어준 유일한 피붙이를 잃는다는 것은, 복동이에게는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끝나는 것과 같은 공포였습니다.
"어허, 이 녀석이 왜 이리 어린애처럼 보채누... 복동아, 내 말 잘 듣거라. 늙은 할미가 저승길 떠나기 전에 네게 마지막으로 남기고픈 당부가 있어서 그런다."
"말씀하세요, 할머니. 제 목숨을 버려서라도 다 들어드릴게요."
"아니다, 네 목숨을 버려서는 절대 안 되지. 내가 떠나고 나면 넌 또 이 험한 세상에 홀로 남겨질 터인데, 그게 제일 마음에 걸리는구나. 복동아, 넌 무섭고 흉측한 요물이 아니야. 내게는 그 어떤 자식보다 살가운 손주였고, 보석보다 빛나는 마음을 가진 착한 아이였단다. 그러니 내가 곁에 없더라도... 사람들이 너를 또다시 손가락질하며 무서워하고 돌을 던지더라도... 절대 그들에게 앙심을 품거나 상처받아 악한 마음을 먹어서는 아니 된다. 알겠느냐?"
"할머니... 흐흑..."
"그리고 한 가지 더, 비록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멀리하긴 했어도 심성이 아주 몹쓸 자들은 아니야. 나중에 혹여나 마을에 큰 환란이 닥치거나 가엾고 어려운 이웃이 생기거든, 네가 할미 대신 그들을 굽어살펴 주거라. 내가 네게 베풀었던 그 작은 밥 한 그릇의 온기를, 이제는 네가 세상에 널리 퍼뜨려 주었으면 좋겠구나. 그것이 이 늙은이의 마지막 소원이다."
복동이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할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약속할게요, 할머니. 할머니 말씀대로 평생 착한 마음 잃지 않고, 마을 사람들을 지키며 살게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그 굳은 맹세가 방안을 울리자, 할머니의 얼굴에는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고 아름다운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래... 우리 복동이, 참으로 고맙고 장하구나. 널 만나서... 이 할미는 십 년 동안 꿈결처럼 행복했느니라..."
그 작은 속삭임을 끝으로 할머니의 앙상한 손에서 스르르 힘이 풀렸고, 두 눈이 편안하게 감겼습니다. 낙엽이 뒹구는 쓸쓸한 가을밤, 복동이는 차갑게 식어가는 할머니를 밤새워 끌어안고 짐승처럼 울부짖었습니다.
며칠 뒤, 마을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와 할머니의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십 년 전의 그 서슬 퍼렇던 오해는 세월 속에 많이 희석되어 있었고, 그래도 같은 마을 사람이라며 마지막 가는 길을 거두어주는 그들의 손길에 복동이는 할머니의 유언을 떠올리며 묵묵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할머니가 양지바른 산기슭에 묻힌 후, 빈집에 홀로 남겨진 복동이는 극심한 외로움 속에서도 할머니와의 약속을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밤이 깊어 사람들이 모두 잠들고 나면, 복동이는 남몰래 산 아래로 내려가 홀로 사는 노인들의 마당에 땔감을 가득 패어 놓았고, 병에 걸린 이웃의 문앞에는 귀한 약초를 조용히 놓아두고 사라졌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도깨비를 두려워했지만, 복동이는 밤의 어둠에 숨어 할머니가 남기고 간 따뜻한 사랑의 씨앗을 마을 곳곳에 소리 없이 뿌리며 고단한 수호신의 삶을 기꺼이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 6: 끔찍한 가뭄에서 마을을 구한 복동이의 희생과 진정한 가족의 탄생
김 할머니가 흙으로 돌아가신 지 어느덧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한여름이 되었지만, 하늘은 원망스러울 정도로 비 한 방울 내려주지 않았지요. 두 달 넘게 지속된 끔찍한 가뭄에 마을 앞을 흐르던 제법 큰 계곡물마저 바닥을 드러내어 하얗게 말라붙었고, 논밭의 벼와 작물들은 누렇게 타들어 가며 쩍쩍 갈라진 땅바닥과 함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식수조차 구하기 어려워진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과 절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습니다.
"아이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대로 가다가는 올가을 추수는커녕 마을 사람들 전체가 말라 죽게 생겼네."
"기우제를 세 번이나 지냈는데도 이리 비가 안 오니, 이 무슨 큰 노여움을 샀단 말인가..."
마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통곡 소리와 어린아이들의 배고픈 칭얼거림이 산기슭에 홀로 지내던 복동이의 귀에도 고스란히 들려왔습니다. 밤마다 몰래 내려가 물을 길어다 주고 약초를 놓아주며 힘을 보탰지만, 거대한 자연의 재앙 앞에서는 도깨비의 자잘한 재주도 그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었습니다.
'할머니... 마을 사람들이 다 죽어가고 있어요. 제가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까요? 할머니라면 이럴 때 어찌하셨을까요?'
복동이는 타는 듯한 태양 아래 양지바른 할머니의 무덤가에 엎드려 간절히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한 줄기 마른바람이 무덤가의 잡초를 흔들며 지나가더니, 귓가에 할머니의 다정하고 따스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복동아, 내 사랑하는 강아지야.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렴.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세상에 귀한 것은 없단다.'
그 순간, 복동이의 눈빛에 결연한 의지가 타올랐습니다. 도깨비들 사이에는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모든 신통력과 생명력을 단 한 번 폭발시키면, 하늘의 문을 열어 비를 부를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복동이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굶주려 죽어가던 자신에게 마지막 밥 한 그릇을 내어주었던 할머니. 그 은혜를 갚는 길은, 할머니가 그토록 사랑했던 이 마을과 사람들을 살려내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날 밤, 복동이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 바위산 정상에 올라가 두 팔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습니다. 그의 온몸에서 푸른 도깨비불이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이내 붉은빛으로 변하며 생명력을 맹렬하게 태워갔습니다.
"하늘이여! 제 모든 생명과 영혼을 바칠 테니, 부디 이 불쌍한 마을에 비를 내려주십시오! 제발 사람들을 살려주십시오!"
피를 토하는 듯한 복동이의 절규가 밤하늘을 찢고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며 바스라져 가던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맑았던 밤하늘에 순식간에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천둥 번개와 함께 장대 같은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 비다! 드디어 비가 온다!"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어! 만세!"
마을 사람들은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얼싸안고 환호했습니다. 갈라진 땅이 빗물을 꿀떡꿀떡 삼키며 생기를 되찾아갔지요. 하지만 그 시각, 바위산 정상에서 모든 힘을 소진한 복동이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쓰러져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물오른 논밭을 둘러보러 산에 올랐던 마을 장정들이 김 할머니 무덤 곁에 차갑게 식어 쓰러져 있는 복동이를 발견했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하늘을 향해 기원했던 흔적과 타다 남은 도깨비불의 재가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아, 아니... 이 도깨비가 왜 여기에... 잠깐, 설마 지난밤의 그 기적 같은 비가... 이 녀석이 제 목숨을 바쳐 내리게 한 거란 말인가!"
"세상에... 우리가 그렇게 요물이라 핍박하고 내쫓으려 했던 아이인데... 우리를 위해 제 목숨을 내놓다니..."
마을 사람들은 그제야 지난 십 년간 할머니가 그토록 피를 토하며 지키려 했던 복동이의 진심을 깨달았습니다. 남몰래 자신들의 마당에 나무를 해다 놓고 가던 짐승의 발자국도, 병든 노모의 문앞에 놓여있던 귀한 약초도 모두 복동이의 짓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오열하며 복동이를 엎고 마을로 뛰어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번갈아 가며 지극정성으로 약을 달이고 밤낮없이 복동이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사람들의 지극한 정성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복동이가 기적처럼 숨을 토해내며 눈을 떴습니다. 눈을 뜬 복동이의 앞에는 낯선 마을 사람들이 그의 손을 꼭 잡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요.
"깨어났구나! 네가 드디어 깨어났어! 미안하다, 우리가 그동안 눈이 멀어 너의 참모습을 보지 못했어. 넌 우리 마을을 살려준 은인이자 하늘이 내린 영물이여."
복동이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활짝 웃었습니다. 비록 몸은 쇠약해졌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세상 그 무엇보다 벅찬 감동이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복동이는 흉측한 도깨비가 아닌, 마을 전체의 따뜻한 사랑을 받는 수호신이자 모두의 막내아들이 되었습니다. 굶어 죽어가던 작은 도깨비와 홀로 남겨진 외로운 노인이 나누었던 밥 한 그릇의 작은 은혜. 그것은 죽음의 문턱을 넘어 온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거대한 꽃으로 피어나 영원히 지지 않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밥 한 그릇에서 시작된 꼬마 도깨비와 할머니의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세상의 차가운 편견 앞에서도 서로를 지켜낸 두 사람의 사랑이, 결국 메마른 마을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흠뻑 적시는 단비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가족이란 핏줄로만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헌신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참으로 고마운 이야기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보시는 건 어떨까요? 다음 시간에는 '묵묵히 일하던 노인에게 도깨비가 준 뜻밖의 선물'이라는 또 다른 따뜻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성실함이 부른 기적의 이야기, 많이 기대해 주세요!